오래전 오늘은 어떤일들이 있었을까요?
[오래전 오늘] 2026-01-11

대한민국 근현대사 전문 해설가입니다. **1월 11일**은 한국사에서 구한말의 변혁부터 현대의 아픈 참사, 그리고 대중문화의 정치적 배경까지 아우르는 매우 중요한 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세 가지 주요 사건을 정리해 드립니다.
---
### 1. 고부 민란 발생: 동학농민혁명의 서막 (1894년)
**📝 사건 설명**
1894년 1월 11일(음력 1월 10일), 전라도 고부군에서 전봉준을 필두로 한 농민들이 봉기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부 민란**입니다. 당시 고부 군수 조병갑은 만석보라는 보를 강제로 쌓게 하고 과도한 수세를 징수하는 등 가혹한 수탈을 일삼았습니다. 이에 분노한 농민들은 '사발통문'을 돌려 결속을 다진 뒤, 고부 관아를 점령하고 창고를 열어 곡식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지역 민란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조정의 안일한 대처와 안핵사 이용태의 폭정이 이어지자, 이는 곧 대규모 **동학농민혁명**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역사상 최대의 농민 운동이자, 이후 갑오개혁과 항일 의병 투쟁의 정신적 뿌리가 된 기념비적인 정치적 사건입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KBS 역사저널 그날 - 동학농민혁명의 시작, 고부민란)
---
### 2.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 (2022년)
**📝 사건 설명**
2022년 1월 11일 오후 3시경,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에서 건설 중이던 현대산업개발 아파트의 외벽이 무너져 내리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현장 노동자 6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조사 결과, 콘크리트 양생 부족, 무단 공법 변경, 지지대(동바리) 조기 철거 등 총체적인 부실 시공이 원인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으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직전에 발생하여 건설 현장의 안전 불감증과 원·하청 구조의 문제점을 정치·사회적 화두로 끌어올렸습니다. 이후 건설 현장의 안전 기준을 강화하고 부실 시공 업체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입법 논의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MBC 뉴스 - 광주 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 현장)
---
### 3. 한국프로야구위원회(KBO) 창립 (1982년)
**📝 사건 설명**
1982년 1월 1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프로야구 창립 총회가 열려 **한국프로야구위원회(KBO)**가 공식 출범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 MBC 청룡, OB 베어스 등 6개 구단이 참여했습니다. 프로야구의 탄생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즐거움을 선사하며 한국 스포츠 산업의 황금기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정치사적으로 볼 때, 이는 전두환 정부의 **'3S 정책(Screen, Stage, Sports)'**의 일환이기도 했습니다.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으로 정통성이 부족했던 신군부 세력이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기획한 측면이 큽니다. 비록 시작은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으나, 40년이 지난 지금 프로야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대중문화이자 민주적인 응원 문화의 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KBS 스포츠 - 한국프로야구 탄생 비화와 3S 정책)
---
[오래전 오늘] 2026-01-10

반갑습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와 정치사의 흐름을 짚어드리는 역사 해설가입니다.
**1월 10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해방 직후의 혼란을 수습하려던 움직임과, 현대 정치에서 남북 관계의 대전환점을 마련했던 중요한 순간들이 교차하는 날입니다. 2026년 1월 10일을 맞아, 과거 이날에 있었던 결정적 사건 두 가지를 선정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 1. 해방 정국의 소용돌이, '신탁통치 반대 운동'의 격화 (1946)
**📝 사건 설명**
* **사건 개요**: 1946년 1월 10일은 해방 직후 한반도를 뒤흔든 '모스크바 3상 회의' 결과(신탁통치 결정)에 대한 반대 운동이 최고조에 달하며 우익 진영의 결집이 공고해지던 시기입니다.
* **전개 과정**: 1945년 말 발표된 신탁통치 소식에 김구, 이승만 등 우익 지도자들은 즉각 반대(반탁)를 선언했습니다. 1946년 1월 10일을 전후하여 서울에서는 대규모 반탁 시위가 연일 이어졌고, 이는 단순한 정책 반대를 넘어 좌우익 간의 극심한 이념 대립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날은 특히 우익 세력이 주축이 된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가 조직적인 활동을 강화하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움직였던 중요한 기점이었습니다.
* **역사적 의의**: 이 사건은 해방 공간에서 '민족주의 대 공산주의'라는 이념적 균열을 결정적으로 고착화시켰습니다. 결국 이 갈등은 미소공동위원회의 결렬과 남북 분단으로 이어지는 비극적 서막이 되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역사드라마] 신탁통치를 둘러싼 좌우익의 갈등과 분열)
---
### 2.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과 '평창 평화 프로세스'의 시작 (2018)
**📝 사건 설명**
* **사건 개요**: 2018년 1월 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였던 한반도 정세를 대화의 국면으로 급전환시킨 정치적 선언이었습니다.
* **전개 과정**: 2017년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한반도 위기설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공식화하고, 이를 계기로 남북 관계 개선 및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운전석론'을 강조했습니다. 이 발표 직후 남북 고위급 회담이 급물살을 탔으며, 이는 훗날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되었습니다.
* **역사적 의의**: 이 사건은 현대 정치사에서 '평화 프로세스'라는 전략적 접근이 어떻게 외교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입니다. 비록 이후 비핵화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으나,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한국 정부의 주도적인 노력이 정점에 달했던 순간으로 평가받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2018년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하이라이트)
---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1월 10일의 기록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을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래전 오늘] 2026-01-09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근현대사와 정치사를 알기 쉽게 풀어드리는 역사 해설가이자 미디어 분석가입니다.
**2026년 1월 9일**을 맞이하여, 과거 '1월 9일'에 일어났던 대한민국 역사의 결정적 순간 두 가지를 선정했습니다. 구한말 외교의 비극과 현대사 속 시민의 아픔이 담긴 사건들입니다.
---
### 1. 한성조약 체결 (1885년 1월 9일)
**📝 사건 설명**
1885년 1월 9일은 조선과 일본 사이에 **'한성조약(漢城條約)'**이 체결된 날입니다. 이 조약은 1884년 12월에 일어난 **갑신정변**의 사후 처리를 위해 맺어졌습니다.
* **배경:** 김옥균 등 개화파가 주도한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끝나면서, 정변 과정에서 일본 공사관이 불타고 일본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일본은 이를 빌미로 조선 정부에 강력한 배상을 요구했습니다.
* **전개:** 일본은 이노우에 가오루를 전권대사로 보내 군대를 동원해 위협하며 협상을 강요했습니다. 결국 조선의 전권대신 김홍집과 일본의 이노우에 사이에 5개 조항의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 **결과 및 의의:** 조선은 일본에 사과 사절단을 파견하고, 11만 원이라는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하며, 불탄 일본 공사관 신축 비용을 부담해야 했습니다. 이 조약은 갑신정변 이후 일본의 영향력이 다시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뒤이어 체결된 텐진조약과 함께 한반도가 청나라와 일본의 본격적인 세력 다툼의 장으로 변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EBS 역사채널e - 3일 천하와 한성조약)
---
### 2. 세월호 참사 1000일과 탄핵 정국의 정점 (2017년 1월 9일)
**📝 사건 설명**
2017년 1월 9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매우 상징적인 날입니다. 바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000일**이 되는 날이었으며, 동시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을 위한 헌법재판소의 변론이 긴박하게 진행되던 시기였습니다.
* **배경:**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이는 2016년 말 국정농단 사건과 맞물려 거대한 촛불집회로 이어졌습니다.
* **전개:** 1,000일째 되던 이 날, 안산 세월호 합동분향소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추모 행사가 열렸습니다. 시민들은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을 요구하며 대통령의 책임론을 강력히 제기했습니다. 같은 날 국회에서는 최순실 국정농단 조사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마지막 청문회가 열려 정국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 **역사적 의의:** 이 날은 국가의 존재 이유와 국민의 생명권에 대해 온 국민이 다시금 질문을 던진 날입니다. 1,000일이라는 시간 동안 축적된 슬픔과 분노는 결국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시민의 힘으로 권력을 견제'한 탄핵이라는 헌법적 절차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JTBC 뉴스룸 - 세월호 1000일의 기다림)
---
오늘 소개해 드린 두 사건은 각각 **'외교적 실책과 주권의 약화'**, 그리고 **'시민 의식의 성장과 국가의 책임'**이라는 주제를 우리에게 던져줍니다. 과거의 교훈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오래전 오늘] 2026-01-08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주요 흐름을 짚어드리는 역사 해설가입니다. **1월 8일**은 조국의 독립을 향한 뜨거운 의지와 현대사의 거대한 갈림길이 되었던 사건들이 교차하는 날입니다. 이날 발생한 가장 상징적인 사건 3가지를 선정하여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 1. 이봉창 의사의 일왕 폭탄 투척 사건 (1932)
**📝 사건 설명**
- **사건 개요**: 1932년 1월 8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한인애국단 소속의 이봉창 의사가 일본 도쿄 사쿠라다몬 앞에서 일본 천황 히로히토를 향해 수류탄을 투척한 사건입니다.
- **전개 과정**: 일본 생활을 통해 민족 차별의 울분을 느꼈던 이봉창은 백범 김구를 찾아가 "인생의 즐거움을 다 맛보았으니 이제는 영원한 즐거움을 위해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는 일왕이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목을 노려 폭탄을 던졌으나, 안타깝게도 폭탄은 일왕의 마차 뒤편에서 터져 거사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 **역사적 의의**: 비록 일왕 처단에는 실패했지만, 이 사건은 침체해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또한 중국인들에게 한국인의 항일 의지를 강렬하게 각인시켜, 이후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거사와 중국 정부의 임시정부 지원을 이끌어내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EBS 역사의 답 - 이봉창 의사의 도쿄 거사)
---
### 2. UN 한국임시위원단(UNTCOK) 서울 도착 (1948)
**📝 사건 설명**
- **사건 개요**: 1948년 1월 8일, 한반도의 독립과 정부 수립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유엔(UN)이 결성한 '한국임시위원단'이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했습니다.
- **전개 과정**: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 한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유엔은 총회 결의를 통해 위원단을 파견하여 인구 비례에 의한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하려 했습니다. 위원단은 서울에 도착해 환영을 받았으나, 북측을 점령하고 있던 소련군이 위원단의 북한 진입을 거부하면서 난항에 부딪혔습니다.
- **역사적 의의**: 이 사건은 한반도 내 '통일 정부 수립' 노력이 냉전의 벽에 부딪히기 시작한 상징적인 순간입니다. 결국 유엔 소총회는 '선거가 가능한 지역(남한)에서만이라도 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하게 되었고, 이는 5.10 총선거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 그리고 남북 분단의 가속화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중대한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국가기록원 - 기록으로 보는 정부수립 과정)
---
### 3.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출생 (1983 추정)
**📝 사건 설명**
- **사건 개요**: 북한의 3대 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공식적인 생일로 알려진 날입니다. (정확한 연도에 대해서는 1984년설 등 논란이 있으나 우리 정부와 외신은 1월 8일을 생일로 특정하고 있습니다.)
- **전개 과정**: 김정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김정은은 2011년 부친 사망 후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권력을 승계했습니다. 이후 핵 개발 강행과 숙청을 통한 공포 정치, 그리고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통한 외교적 행보를 동시에 보이며 한반도 정세의 핵심 인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 **정치적 의의**: 매년 1월 8일을 기점으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나 대외 메시지 발신 여부가 우리 안보와 정치권의 주요 분석 대상이 됩니다. 특히 2020년대 들어 '남북 관계의 적대적 두 국가 관계' 규정 등 그의 정책 변화는 대한민국 현대사 및 안보 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BBC News 코리아 - 김정은 10년, 북한은 어떻게 변했나)
---
**해설가의 한마디**: 1월 8일은 독립을 위한 희생(이봉창), 국가 건설을 위한 국제적 노력(UN 위원단),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남북 관계의 현실(김정은)이 모두 얽혀 있는 날입니다. 과거를 기억하며 미래의 평화를 고민해 보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오래전 오늘] 2026-01-07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짚어드리는 역사 해설가이자 미디어 분석가입니다.
1월 7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국면을 전환하는 중요한 결정들이 내려졌던 날입니다. 특히 해방 직후의 혼란기 속에서 민족의 진로를 결정지으려 했던 움직임과, 냉전 종식기 남북 관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려 했던 사건이 이 날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선정한 두 가지 핵심 사건을 상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 1. 신탁통치 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 결성 (1946년)
**📝 사건 설명**
* **사건 개요**: 1945년 12월 말 발표된 '모스크바 3상 회의'의 결과(한반도에 최대 5년간의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는 내용)에 반대하여, 1946년 1월 7일 김구, 이승만 등 우익 세력을 중심으로 결성된 강력한 반대 운동 기구입니다.
* **전개 과정**: 해방의 기쁨도 잠시, 신탁통치 소식은 한반도를 거대한 소용돌이로 몰아넣었습니다. 처음에는 좌우익 모두 반대했으나, 곧 소련의 입장을 지지하는 좌익(찬탁)과 끝까지 반대하는 우익(반탁)으로 갈라져 극한 대립을 벌였습니다. 1월 7일 결성된 이 위원회는 전국적인 파업과 시위를 주도하며 반탁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습니다.
* **역사적 의의**: 이 사건은 해방 정국에서 좌우 대립이 본격화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반탁 운동은 민족의 자율성을 지키려는 순수한 열정이었으나, 동시에 남북의 정치 세력이 완전히 갈라서는 '분단의 전초전'이 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 정치 지형에 존재하는 보수와 진보의 뿌리 깊은 갈등의 시작점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해방정국을 뒤흔든 신탁통치 논쟁)
---
### 2. 팀 스피리트(Team Spirit) 훈련 중단 발표 (1992년)
**📝 사건 설명**
* **사건 개요**: 1992년 1월 7일, 대한민국 정부는 그해 예정되었던 한미 합동 군사훈련인 '팀 스피리트'를 전격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북한의 핵 사찰 수용을 이끌어내기 위한 파격적인 조치였습니다.
* **전개 과정**: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조치입니다. 당시 남과 북은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한 상태였습니다. 정부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사찰을 받는 조건으로,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던 대규모 군사훈련을 중단하는 카드를 던진 것입니다.
* **역사적 의의**: 이 결정은 냉전 종식 이후 한반도에 평화 무드를 조성하고 북한을 국제 사회로 끌어내려 했던 '햇볕정책' 이전의 중대한 시도였습니다. 비록 이후 북핵 위기가 다시 불거지며 훈련이 재개되기도 했지만, 군사적 긴장 완화를 통해 대화의 물꼬를 트려 했던 현대사 속 '신뢰 프로세스'의 상징적 장면입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한반도 비핵화와 팀 스피리트 훈련의 역사)
---
[오래전 오늘] 2026-01-06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근현대사와 정치사를 분석하고 전달하는 역사 해설가입니다.
2026년 1월 6일을 맞아, 과거의 오늘 대한민국 사회와 정치 지형에 큰 획을 그었던 주요 사건 3가지를 선정하여 설명해 드립니다.
---
### 1. 야간통행금지 해제 (1982년)
**📝 사건 설명**
1982년 1월 6일 자정, 대한민국 국민의 밤을 36년 4개월 동안 묶어두었던 '야간통행금지'가 전격 해제되었습니다. 1945년 해방 직후 미 군정청에 의해 시작된 통행금지는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일반인의 통행을 엄격히 제한해 왔습니다.
**전개 과정**: 전두환 정부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후, 대외적으로 자유로운 국가 이미지를 홍보하고 대내적으로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 이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당시 국회는 1981년 12월 '통행금지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1982년 1월 6일 새벽 0시를 기해 경기와 강원 일부 접경 지역을 제외한 전국에서 통행금지가 사라졌습니다.
**역사적 의의**: 이 사건은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송두리째 바꾼 문화적 혁명과도 같았습니다. '심야 문화'가 탄생했고, 외식업과 운수업 등 경제 전반에 활기가 돌았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이른바 '3S 정책(Screen, Sports, Sex/Soft)'의 일환으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국민의 기본권인 '거주·이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회복했다는 점과 근대적 시민의 삶으로 한 단계 나아갔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대한뉴스-야간통행금지 해제)
---
### 2. 김대중 전 대통령 탄생 (1924년)
**📝 사건 설명**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이자 한국인 최초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후광(後廣)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24년 1월 6일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에서 태어났습니다.
**전개 과정**: 그는 일제강점기 청년기를 보내고 해방 후 정계에 입문하여 5대, 6대, 7대, 8대, 13대, 14대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여러 차례의 죽을 고비와 수감, 망명 생활을 견뎌내며 '인동초'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1997년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야 간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룩하며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역사적 의의**: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입니다. 재임 시절 6.15 남북공동선언을 통해 남북 화해의 시대를 열었으며, IMF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하는 리더십을 보였습니다. 1월 6일은 한국 정치사에서 거인의 탄생을 기리는 날이자, 그가 지향했던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는 날입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김대중 전 대통령 일대기)
---
### 3. 북한 제4차 핵실험 - '수소탄' 시험 발표 (2016년)
**📝 사건 설명**
2016년 1월 6일 오전, 북한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 실험장에서 제4차 핵실험을 단행했습니다. 북한은 당일 낮 특별 중대보도를 통해 "첫 수소탄 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고 발표하여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전개 과정**: 오전 10시 30분경 풍계리 인근에서 규모 5.0의 인공지진이 감지되었고, 정부는 긴급 NSC 상임위원회를 소집했습니다. 북한은 이 실험이 '자위적 조치'임을 강조하며 소형화된 수소폭탄 기술을 확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역사적 의의**: 이 사건은 한반도 안보 지형에 심각한 위기를 불러왔습니다. 국제사회는 더욱 강력한 대북 제재를 논의하기 시작했고, 남북 관계는 급속도로 얼어붙었습니다. 특히 이 실험의 여파로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2016년 2월)과 사드(THAAD) 배치 논의가 본격화되는 등, 동북아시아의 군사적·정치적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KBS 뉴스-북한 4차 핵실험 속보)
---
해설가와 함께한 오늘의 역사 여행이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과거를 통해 오늘을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뜻깊은 하루 되십시오!
[오래전 오늘] 2026-01-05

반갑습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짚어드리는 역사 해설가이자 미디어 분석가입니다.
**1월 5일**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국민의 일상이 획기적으로 변했던 순간과 민족의 비극이 교차하는 날입니다. 이 날 있었던 주요 사건 3가지를 선정하여 해설해 드립니다.
---
### 1. 야간 통행금지 전격 해제 (1982)
**📝 사건 설명**
대한민국 국민의 밤을 37년 동안 묶어두었던 '야간 통행금지'가 1982년 1월 5일 마침내 해제되었습니다. 1945년 미 군정청의 포고령으로 시작된 통행금지는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일반인의 통행을 금지하던 제도였습니다.
* **배경 및 전개**: 전두환 정부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를 앞두고 대외적으로 한국의 안정된 치안을 과시하고, 내부적으로는 강권적인 이미지를 완화하기 위해 이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1982년 1월 5일 국무회의에서 '야간 통행금지 해제'가 의결되었고, 다음 날인 1월 6일 새벽부터 전국(일부 전방 및 해안 지역 제외)에서 통금 없는 밤이 시작되었습니다.
* **역사적 의의**: 국민의 기본권인 '거주·이전의 자유'를 회복했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심야 영업이 가능해지면서 서비스업과 유통업이 활성화되었고, '밤의 문화'가 생겨나는 등 한국인의 생활 패턴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사건입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대한뉴스] 야간통행금지 해제)
---
### 2. 6·25 전쟁 중 1.4 후퇴와 서울 철수 완료 (1951)
**📝 사건 설명**
1951년 1월 5일은 6·25 전쟁 중 중공군에 밀려 우리 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다시 내주고 한강 이남으로 완전히 철수를 마무리한 날입니다. 보통 '1.4 후퇴'라고 부르는 이 시기의 정점입니다.
* **배경 및 전개**: 중공군의 거센 공세(신정 공세)로 인해 1월 4일 서울이 재함락되었고, 1월 5일 우리 군과 정부는 눈물을 머금고 한강 다리를 건너 남쪽으로 철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피난민이 엄동설한 속에 남쪽으로 향하며 이산가족이 발생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 **역사적 의의**: 국군과 유엔군이 전열을 가다듬어 다시 반격할 기회를 모색하는 뼈아픈 후퇴의 순간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전쟁의 장기화를 의미했으며, 당시 피난민들이 겪은 고통은 현재까지도 한국 현대사의 깊은 상흔으로 남아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그날의 기록 - 1.4 후퇴와 피난민들의 행렬)
---
### 3.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시안 발표 (1961)
**📝 사건 설명**
대한민국 근대화의 설계도라 할 수 있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초기 시안이 1961년 1월 5일, 당시 장면 내각 하에서 공식적으로 검토 및 발표되었습니다.
* **배경 및 전개**: 흔히 박정희 정부의 전유물로 알려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사실 제2공화국 장면 내각의 부흥부에서 기초가 다져졌습니다. 1961년 1월 5일, 정부는 자립 경제 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수치를 담은 계획안을 발표했습니다. 이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이 계획은 군사정부에 의해 수정·보완되어 강력하게 실행되었습니다.
* **역사적 의의**: 한국이 원조에 의존하던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 체계적인 '국가 주도형 성장 모델'을 도입하기 시작한 역사적 분기점입니다. 비록 정치적 격변 속에 주체는 바뀌었으나, 한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끈 원동력이 이 시기에 싹텄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한강의 기적,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시작)
---
위 사건들은 각각 **자유의 회복, 전쟁의 비극, 경제적 자립**이라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핵심 키워드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1월 5일이라는 오늘을 통해 과거를 되새겨보는 뜻깊은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래전 오늘] 2026-01-04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근현대사와 정치사를 깊이 있게 조명하는 역사 해설가이자 미디어 분석가입니다.
1월 4일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비극과 변화, 그리고 우리 삶에 깊은 흔적을 남긴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던 날입니다. 특히 6.25 전쟁의 가장 뼈아픈 순간인 '1.4 후퇴'를 비롯해, 근대화의 상징인 경부선 개통 등이 이 날에 있었습니다.
선정된 세 가지 주요 사건을 상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 1. 1.4 후퇴 (1951년)
**📝 사건 설명**
1.4 후퇴는 6.25 전쟁 중인 1951년 1월 4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해 국군과 UN군이 다시 서울을 내어주고 남쪽으로 퇴각한 사건입니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수복하고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아군은 중공군의 거센 공세(춘계공세)에 밀려 다시 후퇴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피란민이 얼어붙은 한강을 건너거나 열차 지붕에 올라타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특히 이 시기는 혹독한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비극적 시기였으며,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이 된 흥남 철수 작전(1950년 12월) 직후의 긴박한 상황이 이 즈음에 절정에 달했습니다.
**역사적 의의**
이 사건으로 인해 전쟁은 단기 종결의 희망을 잃고 장기전 체제로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수많은 이산가족이 발생하여 현대사 최대의 비극 중 하나로 남았으며, '굳세어라 금순아'와 같은 수많은 전쟁 가요와 문학 작품의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KBS 역사저널 그날 - 1.4 후퇴와 흥남철수)
---
### 2. 경부선 철도 전구간 개통 (1905년)
**📝 사건 설명**
1905년 1월 4일은 서울(영등포)과 부산(초량)을 잇는 경부선 철도가 정식으로 영업을 시작한 날입니다. 일제는 러일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철도 건설을 서둘렀으며, 대한제국의 토지와 노동력을 강제로 동원하여 단기간에 완공했습니다.
경부선은 당시 17시간~30시간 정도 소요되었으며, 이는 도보로 보름 이상 걸리던 한양-부산 간 거리를 획기적으로 단축한 혁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철도는 조선의 자원 수탈과 일본군의 대륙 진출을 위한 도구로 주로 활용되었다는 아픈 이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적 의의**
경부선은 한국 근대 교통의 중추가 되었으며, 이후 경부고속도로와 KTX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물류 네트워크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근대화'라는 외형적 성장과 '식민지 수탈'이라는 민족적 아픔이 공존하는 상징적인 역사적 산물입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대한뉴스 - 경부선 전철화와 철도의 역사)
---
### 3. 수도권 기록적 폭설과 '박대기 기자' (2010년)
**📝 사건 설명**
정치사적 사건은 아니지만, 현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1월 4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회적 사건 중 하나입니다. 2010년 1월 4일,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1937년 기상 관측 이래 최대치인 25.8cm의 폭설이 내려 도심 전체가 마비되었습니다.
이날 KBS 박대기 기자가 온몸에 눈을 맞으며 현장 리포트를 하는 모습이 전파를 타며 큰 화제가 되었고, '투혼의 상징'이자 인터넷 밈(Meme)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폭설로 인해 출근길 대혼란, 항공기 결항, 시설물 붕괴 등 막대한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역사적 의의**
도시 인프라가 기후 위기와 자연재해에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 경종을 울린 사건입니다. 이후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들의 제설 시스템 보완과 재난 대응 매뉴얼이 대대적으로 개편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KBS 뉴스 - 2010년 1월 4일 기록적 폭설 현장)
---
[오래전 오늘] 2026-01-03

반갑습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짚어드리는 역사 해설가입니다.
입력하신 **1월 3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민족의 운명을 결정지으려 했던 격동의 순간들과, 전쟁의 아픔이 서린 결정적 장면들이 교차하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두 가지 주요 사건을 정리해 드립니다.
---
### 1. 신탁통치 반대 국민총동원 위원회 결성 및 대규모 시위 (1946년)
**📝 사건 설명**
- **사건 개요**: 1945년 말,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에서 결정된 '한반도 5년간 신탁통치' 소식이 전해지자 한반도는 거대한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에 반대하여 1946년 1월 3일,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서 '신탁통치 반대 국민대회'가 열렸습니다.
- **전개 과정**: 김구, 이승만 등 우익 세력을 중심으로 결성된 '신탁통치반대 국민총동원 위원회'는 이날 수만 명의 시민과 함께 강력한 반탁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당초 좌우익 모두 반대했으나, 이후 좌익 세력이 찬탁(모스크바 결정 지지)으로 돌아서면서 남한 내 좌우 대립은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되었습니다.
- **역사적 의의**: 이 사건은 단순한 시위를 넘어, 해방 정국에서 좌익과 우익이 완전히 갈라서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향후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과 한반도 분단의 비극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가슴 아픈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해방정국을 뒤흔든 신탁통치 찬반 논란)
---
### 2. 1.4 후퇴와 서울의 피란 행렬 (1951년)
**📝 사건 설명**
- **사건 개요**: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국군과 UN군이 밀려나던 중, 1951년 1월 3일은 서울 시민들이 적의 점령을 피해 얼어붙은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필사의 탈출을 하던 정점의 날이었습니다.
- **전개 과정**: 1950년 흥남 철수 이후 밀려오는 중공군의 공세를 견디지 못한 정부는 1월 3일부로 서울 철수를 공식화했습니다.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혹한 속에서 수십만 명의 피란민은 보따리를 싸 들고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를 걸어서, 혹은 마지막 열차에 매달려 남하했습니다. 바로 다음 날인 1월 4일, 서울은 다시 공산군에게 점령당하게 됩니다.
- **역사적 의의**: '1.4 후퇴'는 한국전쟁 중 가장 뼈아픈 후퇴 중 하나로 기억됩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이산가족이 발생했으며, 전쟁의 참혹함과 민초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동시에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오늘날까지도 실향민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통한의 날로 남아 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6.25 전쟁 최대의 위기, 1.4 후퇴의 기록)
---
1월 3일은 이처럼 **해방 직후의 이념 갈등**과 **전쟁의 비극적 후퇴**라는 우리 현대사의 굵직한 상처들이 새겨진 날입니다. 이 사건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 보시길 바랍니다.
[오래전 오늘] 2026-01-01
요청하신 **1월 1일**은 새해를 시작하는 상징적인 날인만큼, 우리 역사 속에서도 낡은 질서를 뒤바꾸거나 새로운 시대를 선언하는 굵직한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대한민국 사회와 정치의 기틀에 큰 영향을 미친 세 가지 사건을 선정해 보았습니다.
---
### 1. 태양력(양력) 공식 시행과 '건양(建陽)' 연호 사용 (1896년)
**📝 사건 설명**
조선은 수천 년간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한 음력을 사용해 왔으나, 1896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서구식 **태양력(양력)**을 공식 채택했습니다. 이는 고종 황제가 추진한 '을미개혁'의 핵심 내용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고종은 양력을 채택함과 동시에 "세우다(建), 햇볕(陽)"이라는 뜻의 **'건양(建陽)'**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선포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달력을 바꾼 것을 넘어, 전통적인 유교적 시간 질서에서 벗어나 국제 사회의 표준에 발을 맞추겠다는 **근대화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단발령 등 강압적인 개혁 조치와 맞물려 당시 유생들과 백성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매년 1월 1일을 신정(新正)으로 기념하는 뿌리가 바로 이 시점에 닿아 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조선의 시간은 어떻게 바뀌었나? 을미개혁과 태양력)
---
### 2. 경부선 철도 전 구간 개통 (1905년)
**📝 사건 설명**
1905년 1월 1일, 서울(서대문)과 부산(초량)을 잇는 **경부선 철도**가 공식 개통되었습니다. 일본 자본과 기술에 의해 건설된 이 철도는 한반도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최초의 거대 간선망이었습니다.
경부선 개통은 한국 경제와 사회 구조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틀 이상 걸리던 서울-부산 간 이동 시간이 30시간 이내로 단축되면서 물류와 인적 교류의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뼈아픈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일제는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공사를 강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조선 민중의 토지가 강탈되고 강제 노역이 동원되었습니다. 경부선은 **근대적 문물의 도입**이라는 측면과 **식민지 수탈의 도구**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지닌 대한민국 근대사의 상징적 시설입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철도에 새겨진 식민의 기억, 경부선 120년 역사)
---
### 3. 신탁통치 반대(반탁) 운동의 본격화 (1946년)
**📝 사건 설명**
해방 직후인 1946년 1월 1일은 한반도가 극심한 이념적 혼란과 분단의 기로에 서 있던 날이었습니다. 전해 12월 말 발표된 '모스크바 3상 회의'의 신탁통치 결정 소식이 전해지자, 1946년 새해 첫날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는 **신탁통치 반대(반탁) 운동**이 거세게 휘몰아쳤습니다.
김구, 이승만 등 우익 세력은 '신탁통치 반대 국민총동원 위원회'를 결성하여 대규모 시위를 주도했습니다. 초기에는 좌익 세력도 반대 목소리를 냈으나, 이후 찬탁(신탁통치 지지)으로 입장을 바꾸면서 남한 내 좌우 대립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이 1월 1일의 혼란과 분노는 단순히 정책에 대한 반대를 넘어, 향후 남북한의 단독 정부 수립과 **민족 분단으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정치적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해방 공간의 최대 비극, 신탁통치 논쟁과 좌우 합작의 실패)
---
**해설가의 한마디:** 1월 1일은 누구에게나 설레는 시작의 날이지만, 우리 역사 속에서는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는 열망과 외세의 영향력이 복잡하게 얽혀 있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이 사건들을 되새기며, 지금의 대한민국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는 뜻깊은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래전 오늘] 2025-12-31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숨결을 전하는 역사 해설가입니다. **12월 31일**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인 동시에,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꾼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했던 날이기도 합니다. 해방 정국의 혼란부터 민주화의 열기까지, 오늘 날짜에 기록된 결정적 순간 3가지를 정리해 드립니다.
---
### 1. 신탁통치 반대 국민총동원 위원회 결성 및 대규모 시위 (1945)
**📝 사건 설명**
1945년 12월 말,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에서 한반도에 대해 최대 5년간의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는 결정이 알려지자 한반도는 거대한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에 김구 선생을 필두로 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세력은 12월 31일 '신탁통치반대 국민총동원 위원회'를 결성하고 서울 시내에서 대규모 반탁(反託) 시위를 전개했습니다.
**전개 과정**: 12월 31일 오후, 서울 운동장에서 수만 명의 시민이 모여 "신탁통치 절대 반대"를 외치며 행진했습니다. 당시 임시정부 세력은 이를 '제2의 독립운동'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역사적 의의**: 이 사건은 해방 정국에서 좌익과 우익이 극명하게 갈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반탁 운동은 우익 세력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했으나, 결과적으로 남북 분단의 비극을 고착화하는 정치적 갈등의 시작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해방정국의 소용돌이, 신탁통치 논란)
---
### 2. 제5공화국 비리 조사를 위한 '5공 청문회'의 상징적 마무리 (1988)
**📝 사건 설명**
1987년 민주화 이후 탄생한 제13대 국회는 전두환 정권의 비리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국정조사 청문회'를 열었습니다. 1988년 12월 31일은 이 뜨거웠던 청문회 정국이 한 해를 마무리하며 국민들에게 민주주의의 힘을 각인시켰던 시기입니다.
**전개 과정**: 당시 TV로 생중계된 청문회는 전국적인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노무현 당시 의원이 날카로운 질문으로 '청문회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12월 31일 전후로 정치권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증언 문제와 5공 청산 범위를 두고 치열한 협상을 벌였습니다.
**역사적 의의**: 국민들이 권력의 핵심 인사들을 소환해 책임을 묻는 장면을 직접 목격함으로써,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확인한 사건입니다. 한국 정치사에서 의회 민주주의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대한민국을 뒤흔든 1988년 5공 청문회)
---
### 3. '송박영신(送朴迎新)' - 제10차 촛불집회 (2016)
**📝 사건 설명**
2016년 12월 31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이후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에 모여 제10차 촛불집회를 열었습니다. 이날 집회의 슬로건은 '박근혜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의미의 '송박영신(送朴迎新)'이었습니다.
**전개 과정**: 영하의 추위 속에서도 서울에만 100만 명 이상의 시민이 모였습니다. 시민들은 헌법재판소의 빠른 탄핵 인용을 촉구하며 평화적인 집회와 문화제를 이어갔습니다. 자정을 기해 보신각 타종 행사와 연결된 이 집회는 시민 혁명의 정점을 보여주었습니다.
**역사적 의의**: 연인원 1,000만 명을 돌파한 이 집회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시민의 평화적 참여가 어떻게 헌법적 절차를 이끌어내고 정치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전 세계에 보여준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2016년 마지막 밤, 100만의 촛불 '송박영신')
---
**역사 해설가의 한마디**: 12월 31일은 단순한 연말이 아닙니다. 격동의 시기마다 우리 국민들은 거리로 나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고 정의를 외쳤습니다. 오늘 소개한 세 사건 모두 '대한민국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래전 오늘] 2025-12-30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12월 30일**은 법치주의의 변곡점이 된 사건과 해방 정국의 혼란상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건이 공존하는 날입니다. 역사의 흐름을 바꾼 주요 사건 두 가지를 선정하여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 1. 대한민국의 마지막 사형 집행 (1997)
**📝 사건 설명**
1997년 12월 30일, 김영삼 정부의 임기 말에 23명의 사형수에 대한 형 집행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의 동시 집행이자,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진 **'마지막 사형 집행'**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 **배경 및 전개**: 당시 우리 사회는 막강한 범죄 억제력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여론과 인권 존중이라는 가치가 충돌하던 시기였습니다. 정부는 흉악범들에 대한 엄벌 의지를 천명하며 전국 5개 교도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집행을 단행했습니다.
* **역사적 의의**: 이 날 이후 대한민국은 단 한 차례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마지막 집행으로부터 10년이 지난 2007년, 대한민국을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사형제 존폐와 인권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시킨 중요한 기점이 되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대한민국 마지막 사형집행, 그 후 25년)
---
### 2. 고하 송진우 암살 사건 (1945)
**📝 사건 설명**
해방 직후의 극심한 이념 대립 속에서 1945년 12월 30일 새벽, 한국민주당의 수석총무였던 **고하 송진우(宋鎭禹)**가 서울 자택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고 서거했습니다. 이는 해방 정국에서 발생한 최초의 주요 정치인 암살 사건입니다.
* **배경 및 전개**: 당시 한반도는 신탁통치 찬반 논란(찬탁 vs 반탁)으로 들끓고 있었습니다. 송진우는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나,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미군정과 협력하여 실력을 양성하자는 신중론을 펼쳤습니다. 이러한 그의 태도가 극우 세력이나 급진적인 반탁 세력에게 변절로 오해받으면서 정치적 타겟이 되었습니다.
* **역사적 의의**: 송진우의 암살은 해방 정국에서 정적을 폭력으로 제거하는 '백색 테러'의 서막을 알린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이후 여운형, 김구 등 주요 정치 지도자들이 잇따라 암살당하는 연쇄적 비극의 시작점이 되었으며, 이는 온건 중도파의 입지를 좁히고 남북 분단과 좌우 대립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해방정국과 송진우 암살의 진실)
---
[오래전 오늘] 2025-12-29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역사 해설가입니다.
12월 29일은 한 해가 마무리되는 시점이지만, 한국 정치사에서는 체제의 변화나 과거사 청산과 같은 굵직한 마침표와 새로운 시작이 교차했던 날입니다. 2025년 12월 29일을 맞아, 우리 역사의 흐름을 바꾼 주요 사건들을 정리해 드립니다.
---
### 1. 유신헌법 공포와 제4공화국 출범 (1972년)
**📝 사건 설명**
**- 사건 개요:** 1972년 12월 29일, 박정희 정부는 이른바 '유신헌법'을 공식 공포했습니다. 이는 그해 10월 17일 선포된 '10월 유신'이라는 비상조치의 결론이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일시적으로 멈추고 '제4공화국'이라는 강력한 권위주의 체제가 시작된 날입니다.
**- 전개 과정:**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신승한 박정희 대통령은 장기 집권을 위해 헌법 개정을 구상했습니다. 1972년 10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한 뒤,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간접 선거와 대통령의 국회의원 선임권 등을 골자로 한 개헌안을 마련했습니다. 이 안은 11월 국민투표를 거쳐 12월 27일 박정희 대통령이 제8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29일 법령으로서 공식 발효되었습니다.
**- 역사적 의의:** 유신헌법은 대통령에게 입법·사법·행정의 삼권을 집중시킨 '제왕적 대통령제'의 정점이었습니다. 이는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켰다는 비판을 받으나, 동시에 정부 주도의 중화학 공업화와 경제 성장을 밀어붙이는 정치적 기반이 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한국 정치사에서 '민주화 운동'의 가장 큰 투쟁 대상이었던 체제가 바로 이날 공식화되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역사저널 그날] 박정희의 승부수, 10월 유신)
---
### 2. 5·18 특별법 제정 (1995년)
**📝 사건 설명**
**- 사건 개요:** 1995년 12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5·18 특별법)'이 통과되었습니다. 이는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의 핵심으로, 1979년 12·12 군사반란과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탄압의 주동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사건입니다.
**- 전개 과정:** 당초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관련자들을 기소 유예 처분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적 공분과 단식 농성 등이 이어지자, 김영삼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특별법 제정을 지시했습니다. 이 법은 헌정 질서 파괴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정지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 역사적 의의:**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들을 내란 및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하고 심판한 기록적인 사건입니다. 이는 '정의가 승리한다'는 법치주의 원칙을 세우고, 군부 독재의 잔재를 청산하며 한국 민주주의의 질적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분기점으로 평가받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 - 전두환, 노태우 구속)
---
### 3. 제5공화국 청산을 위한 노태우-김영삼-김종필-김대중 '4자 합의' (1989년)
**📝 사건 설명**
**- 사건 개요:** 1989년 12월 29일 청와대에서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야당의 세 지도자(김영삼, 김대중, 김종필)가 만나 이른바 '5공 청산'을 위한 최종 합의안을 도출했습니다. 이는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했던 과거사 갈등을 일단락 짓기 위한 정치적 대타협이었습니다.
**- 전개 과정:** 당시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권은 5공화국의 비리와 광주 학살의 진상 규명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끈질긴 협상 끝에 12월 29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회 증언 실 실시, 핵심 인물인 정호용 의원의 사퇴, 피해자 보상 등을 골자로 하는 합의문에 서명했습니다. 이에 따라 12월 31일 전두환 씨가 국회 청문회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 역사적 의의:** 비록 진상 규명이 완벽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으나, 87년 체제 이후 처음으로 여야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극심한 정치적 대립을 해소하려 했던 사례입니다. 이 합의는 이후 1990년 '3당 합당'이라는 한국 정치 지형의 거대한 개편으로 이어지는 전초전이 되기도 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1989년 5공 청산 여야 영수회담 관련 뉴스 자료)
---
[오래전 오늘] 2025-12-28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정밀하게 분석하여 전달하는 역사 해설가이자 미디어 분석가입니다.
12월 28일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뜨거운 투혼부터 해방 정국의 혼란, 그리고 현대 외교사의 가슴 아픈 장면까지 고루 담겨 있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세 가지 주요 사건을 정리해 드립니다.
---
### 1. 나석주 의사의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1926)
**📝 사건 설명**
이 사건은 일제강점기 경제 수탈의 상징이었던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을 대상으로 한 의열단원 나석주 의사의 의거입니다. 1926년 12월 28일, 나석주 의사는 서울 남대문통에 위치한 조선식산은행에 폭탄을 던졌으나 불발되자, 곧바로 을지로의 동양척식주식회사로 달려가 권총으로 일본인 사원들을 처단하고 폭탄을 투척했습니다. 이후 일본 경찰과 치열한 추격전을 벌이다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는 외침과 함께 자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역사적 의의:**
이 의거는 일제의 무단 통치와 경제적 착취에 정면으로 맞선 사건입니다. 특히 농민들의 피땀을 착취하던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타격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렸으며, 의열단의 투쟁 노선이 건재함을 입증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EBS 역사채널e - 나석주의 1926년 12월 28일)
---
### 2.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결과 발표와 신탁통치 파동 (1945)
**📝 사건 설명**
1945년 12월 28일,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를 위해 소집된 미국·영국·소련의 외무장관들이 한반도 문제를 논의한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의 결과가 국내에 보도되었습니다. 이 발표에는 한반도에 민주주의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최대 5년간 미·영·중·소 4개국에 의한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한반도는 거대한 혼란에 빠졌습니다.
**역사적 의의:**
이 발표는 해방 정국의 결정적인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좌우익 모두 신탁통치 반대(반탁) 운동을 펼쳤으나, 이후 소련의 입장을 지지하는 좌익(찬탁)과 이승만·김구를 중심으로 한 우익(반탁)으로 진영이 극명하게 갈리게 됩니다. 이 갈등은 남북 분단과 좌우 대립을 심화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KBS 역사저널 그날 - 신탁통치 결정의 서막)
---
### 3. 12·28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2015)
**📝 사건 설명**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 시절 대한민국과 일본 정부 사이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합의가 전격 발표되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책임 통감과 함께 기시다 후미오 당시 외무상을 통해 사죄의 뜻을 표했고,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재단에 10억 엔을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양국 정부는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음을 확인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역사적 의의:**
이 합의는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의견이 배제된 채 '최종적 해결'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거센 비판과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는 이후 박근혜 정부 탄핵 정국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합의 무효화 논란 및 화해·치유재단 해산으로 이어지며, 한일 관계와 과거사 청산 문제에 있어 현재까지도 큰 과제를 남긴 사건입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JTBC 뉴스룸 - 2015년 12월 28일, 그날의 기록)
---
[오래전 오늘] 2025-12-27

반갑습니다. 역사 해설가이자 미디어 분석가입니다. **12월 27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국운을 갈랐던 결정적인 외교적 발표와 정치적 격변이 일어났던 날입니다. 오늘의 운명을 바꿨던 상징적인 사건들을 선정하여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 1. 모스크바 3상 회의 결과 발표와 신탁통치 파동 (1945)
**📝 사건 설명**
1945년 12월 27일, 미국·영국·소련의 외무장관들이 모스크바에서 모여 전후 한국 문제를 논의한 '모스크바 3국 외무장관 회의(모스크바 3상 회의)'의 결과가 국내에 보도되었습니다. 이 회의에서는 한반도에 민주주의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이를 돕기 위해 미·소 공동위원회를 설치하며, 최대 5년간의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당시 동아일보의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라는 왜곡된 보도가 전해지면서 국내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습니다. (실제로는 미국이 신탁통치를 먼저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보도로 인해 우익 진영은 강력한 '반탁(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전개했고, 좌익 진영은 '모스크바 결정 지지(찬탁)'로 돌아서며 남한 내 좌우 대립이 극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역사적 의의**: 이 사건은 해방 정국에서 좌우익 간의 타협 불가능한 분열을 야기했으며, 결과적으로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는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한 비극적인 현대사의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역사저널 그날] 해방 정국을 뒤흔든 오보, 신탁통치 파동)
---
### 2. 유신 헌법 공포 및 제4공화국 출범 (1972)
**📝 사건 설명**
1972년 12월 27일, 박정희 대통령은 이른바 '유신 헌법'을 공식 공포했습니다. 같은 날 박정희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된 제8대 대통령으로서 취임식을 가졌으며, 이로써 대한민국 헌정사상 가장 권위주의적인 체제로 평가받는 **'유신 체제(제4공화국)'**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유신 헌법은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권, 법관 임명권, 긴급조치권 등 초법적인 권한을 부여했으며, 대통령 선거 방식을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바꾸어 장기 집권을 가능케 했습니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명분 아래 진행되었으나, 실제로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권력 분립을 무력화시킨 조치였습니다.
**역사적 의의**: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일시적으로 정지된 시기로 평가받으며, 이후 이에 항거하는 부마항쟁, 10.26 사태 등으로 이어지는 치열한 민주화 투쟁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KBS 역사다큐] 박정희의 유신 선포와 그 배경)
---
### 3.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 사건 (1996)
**📝 사건 설명**
1996년 12월 26일에서 27일로 넘어가는 새벽, 김영삼 정부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 기습 상륙하여 노동법 개정안과 안기부법(국가안전기획부법) 개정안을 단 7분 만에 단독 처리했습니다.
이 개정안에는 근로자의 정리해고를 쉽게 하고 파업 시 대체 근로를 허용하는 내용(노동법), 그리고 안기부에 수사권을 부여하여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안기부법)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연대하여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총파업을 단행했고, 전국적인 저항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역사적 의의**: 집권 여당의 무리한 '날치기' 통과가 국민적 공분을 사면서 문민정부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혔습니다. 또한, 노동계의 대규모 결집을 가져왔으며, 1997년 IMF 외환위기를 앞두고 사회적 갈등이 극에 달했던 정치적 사건이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1996년 노동법 날치기 통과와 총파업의 기록)
---
위 사건들은 모두 12월 27일이라는 같은 날짜에 일어났지만, 각기 다른 시대적 배경 속에서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을 뒤흔들었습니다. 과거의 기록을 통해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해하는 유익한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역사] 2025-12-26

2025년 12월 26일, 오늘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정치와 역사 속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사건들을 정리해 드립니다. 특히 **1996년의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의회 민주주의와 노동 운동에 큰 획을 그은 사건입니다.
---
### 1. 1996년 12월 26일: 노동법 및 안기부법 '새벽 날치기' 사건
대한민국 헌정 사상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사건입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 의원들이 야당 의원들 몰래 새벽에 국회에 집결하여 법안을 통과시킨 사건입니다.
* **상세 설명:**
* **상황:** 1996년 12월 26일 새벽 6시, 신한국당 의원 154명은 비밀리에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했습니다. 야당(새정치국민회의, 자유민주연합) 의원들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였습니다.
* **진행:** 단 7분 만에 노동관계법 개정안과 국가안전기획부법(현 국정원법) 개정안 등 11개 법안을 전격 통과시켰습니다.
* **주요 내용:** 노동법 개정안에는 '정리해고제' 도입과 '변형 근로제' 등이 포함되어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을 샀고, 안기부법 개정안은 안기부의 수사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민주주의 후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 **결과:** 이 사건 직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연대하여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총파업**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김영삼 정부의 지지율 하락과 국민적 저항으로 이어졌으며, 결국 1997년 3월 노동법을 재개정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MBC 뉴스데스크] 1996년 12월 26일 신한국당 노동법 날치기 통과 현장
---
### 2. 1980년 12월 26일: 국가보위입법회의의 정치 활동 규제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집권하던 시기, 의회 기능을 대신하던 '국가보위입법회의'가 대대적인 정치 활동 규제와 언론 통제를 구체화하던 시기입니다.
* **상세 설명:**
* 12·12 군사 반란과 5·17 비상계엄 확대를 통해 권력을 잡은 신군부는 국회를 해산하고 '국가보위입법회의'를 설치했습니다.
* 1980년 12월 말은 이 기구를 통해 수많은 악법들이 제정되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정치인들의 활동을 묶고 언론을 통폐합하는 법안들이 이 시기를 전후해 집중적으로 처리되었습니다.
* 이는 1981년 제5공화국 출범을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이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KBS 역사저널 그날] 전두환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의 탄생
---
### 3. 기타 역사적 단상 (12월 26일)
* **1953년 12월 26일:** 한국전쟁 직후, 한미행정협정(SOFA) 체결을 위한 실무적인 논의와 전후 복구를 위한 정치적 협의가 활발히 진행되던 시기입니다.
* **1991년 12월 26일:** (세계사적 연관) 소련(USSR)이 공식적으로 해체된 날입니다. 이는 대한민국 외교사에서 '북방정책'이 결실을 맺고 러시아 및 동유럽 국가들과의 수교가 본격화되는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습니다.
---
**요약하자면,** 12월 26일은 한국 정치사에서 **'의회 민주주의의 시련(1996년 날치기)'**과 **'권위주의 체제의 공고화(1980년)'**라는 다소 무거운 역사적 기록을 가진 날입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와 노동권이 얼마나 많은 갈등과 희생을 통해 얻어진 것인지 되새기게 합니다.
[오늘의 역사] 2025-12-25

2025년 12월 25일, 성탄절을 맞아 대한민국의 정치와 역사 속에서 오늘과 같은 날짜(12월 25일)에 있었던 주요 사건들을 정리해 드립니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12월 25일은 단순한 공휴일을 넘어, 국가적 재난, 정치적 격변, 그리고 이념적 갈등의 변곡점이 되었던 기록들이 많습니다.
---
### 1. 1971년 12월 25일: 대연각호텔 화재 참사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화재 사고 중 하나로 기록된 사건입니다.
* **사건 개요:** 서울 충무로에 있던 22층 높이의 대연각호텔에서 가스 폭발로 시작된 불이 건물 전체로 번졌습니다.
* **상세 내용:** 당시 세계 최대의 호텔 화재 사고로 기록되었으며, 163명이 사망하고 63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소방 장비의 부족(고가 사다리차의 높이 한계 등)과 건물의 불법 구조 변경 등이 피해를 키웠습니다.
* **정치/사회적 영향:** 이 사건은 박정희 정부가 도시 안전 및 소방 방재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당시 화재 현장이 TV로 생중계되면서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고층 건물에 대한 안전 기준이 강화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 2. 1945년 12월 25일: 모스크바 3상 회의와 신탁통치 논란의 시작
해방 직후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지었던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 **사건 개요:** 모스크바에서 미국, 영국, 소련의 외교장관이 모여 전후 한국 문제를 논의하던 중이었습니다.
* **상세 내용:** 12월 25일은 회의가 막바지에 다다른 시점으로, 곧이어 발표될 '한국에 대한 최대 5년간의 신탁통치'안이 국내에 알려지기 직전의 폭풍전야와 같던 날입니다.
* **정치적 영향:** 이 회의 결과가 국내에 전해지면서 찬탁(신탁통치 찬성)과 반탁(반대) 세력 간의 극심한 대립이 시작되었고, 이는 결국 남북 분단과 좌우 갈등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습니다.
### 3. 1980년 12월 25일: 국가보위입법회의의 주요 법안 통과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집권하던 시기, 의회 기능을 대신하던 '국가보위입법회의'가 활동하던 때입니다.
* **사건 개요:** 1980년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언론 통제 및 정치 활동 규제를 위한 각종 악법들이 통과되거나 정비되었습니다.
* **상세 내용:** 당시 신군부는 이 시기를 이용해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 등을 통해 야권 정치인들의 손발을 묶고 제5공화국 출범을 위한 법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 4. 1996년 12월 26일 새벽: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 (25일 밤의 긴장)
엄밀히는 26일 새벽이지만, 사건의 발단과 전개는 25일 성탄절 밤부터 시작되었습니다.
* **사건 개요:** 김영삼 정부 당시 신한국당이 노동법과 안기부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처리하기 위해 국회에 기습 집결했습니다.
* **정치적 영향:** 성탄절 연휴 분위기를 틈타 26일 새벽 6시경 전격적으로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이는 이후 민주노총의 총파업과 시민들의 거센 저항으로 이어져 김영삼 정부 하반기 국정 운영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 5. 역대 대통령의 '성탄절 특별사면'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성탄절은 종종 '화합'이라는 명분 아래 대규모 특별사면이 발표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 **주요 사례:** 1997년 12월, 김영삼 대통령은 김대중 당선인과의 합의를 통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성탄절을 앞두고 특별사면(실제 석방은 22일이었으나 성탄절 사면의 성격이 강했음)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성탄절은 정치적 결단에 의한 사면이 자주 논의되는 시점입니다.
---
### 요약 및 오늘(2025-12-25)의 의미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12월 25일은 가족과 연인이 함께하는 따뜻한 휴일이지만, 역사의 기록 속에서는 **안전 사후대책의 절실함(대연각호텔)**, **분단의 아픔을 잉태한 외교적 갈등(모스크바 3상 회의)**, 그리고 **정치적 격변기의 법적 투쟁**들이 뒤섞여 있는 날입니다.
2025년의 오늘, 이러한 과거의 기록들을 되새기며 사회적 안전망을 점검하고 통합의 가치를 고민해 보는 것도 뜻깊은 일이 될 것입니다. 즐겁고 평안한 성탄절 되시길 바랍니다.